[향곡 큰스님 일화]<54> 도토리묵
  2016-12-06 17:57 597

큰스님 생신은 음력 정월 열 여드렛날이다. 그날은 해제한 뒤여서 제방에서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이 구름이 몰려오듯 묘관음사로 모인다. 운수납자라는 말은 구름처럼 물처럼 다니며 누덕누덕 기워 입은 누더기 입고 정진하는 스님들을 일컫는 말이다. 선방에서 오는 스님들은 차비를 겨우 마련해 스님을 뵈러 온다. 한편 절을 가진 주지 스님들이나 각 선방에서는 형편대로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어려운 시절이어서 지금처럼 금전이 오가는 시절이 아니었다.

지리산 대원사 비구니 선방에서 도토리묵을 쑤어 가지고 왔다. 큰스님 몫으로 따로 갖고 와 맛있게 해드리라고 한다. 도토리묵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 선배 스님에게 물었다. 문제는 물어 본 것이 화근이었다. “도토리묵을 어떻게 해야 맛있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그래, 시자가 도토리묵도 요리할 줄 모르나. 모르면 시자를 살지 말아야지.” 뜻밖의 대답에 화가 났지만 참고 다시 물었다.

“가르쳐 주세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아 가르쳐주면 잘 만들려고요.” “몰라, 네가 알아서 해라.” 그 말에 밑바닥에 깔려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참지 못해 언성을 높이는 것도 모자라 맞대꾸를 해버렸다. 하늘같은 선배에게 대들었으니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말하자면 하극상(下剋上)이 벌어진 셈이다.

큰스님 귀에까지 말이 들어갔으니 보따리를 싸서 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스님은 그 일에 대해 아예 모르는 척 하시고 한 마디도 안 하셨다. 그때 큰스님은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을까 늘 가슴속에 묻어두고 생각했다. 아마 야단을 쳐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아니면 덕 익은 감은 아무리 찔러도 홍시도 안 되는 것처럼 저절로 익을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생각하셨을까.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지금이야 옛이야기로 웃어넘길 정도로 선배와의 사이가 다 풀어졌으니 그런 다행이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젠 도토리묵을 잘 만든다. 먼저 묵을 먹기 좋게 채친다. 버섯, 다시마, 무 등으로 다시국물을 우려낸다. 뜨거운 국물로 채친 묵을 한 번 헹군다. 펄펄 끓는 다시국물을 자작자작하게 붓는다. 양념간장을 만들어 묵 위에 조금 올린다. 식성에 따라 김이나 깻잎, 당근, 버섯 등을 채 썰어 고명으로 얹어내면 맛있는 도토리묵이 완성되는 것이다. 

큰스님은 국물이 자작한 도토리묵을 좋아해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끈한 다시국물을 부어 양념을 쳐드리면 후루룩 후루룩 잘도 드셨다. 그 땐 솜씨가 없어 종종 퇴짜를 맞았지만 지금이라면 자신이 있다. 그러나 큰스님이 계시지 않아 해드릴 수가 없으니….

[불교신문3255/2016년12월7일자]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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